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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뮤지컬 <쉐도우> 후기, 왕세자가 굶어 죽는다는 것 - 그 무게에 대하여

 

 

뮤지컬 <쉐도우> 첫 공연을 다녀왔다.
한지상 배우가 연기한 영조, 신은총 배우의 사도.
두 배우 모두 실물을 처음 봤지만, 무대 위의 존재감과 노래, 연기 모두 강렬했다.
특히 락 뮤지컬이라는 장르에 조선의 사도세자와 영조를 다루는 이야기라니.
프리뷰 공연을 놓쳤던 아쉬움이 컸던 만큼 기대가 컸다.

사도세자의 고통, 그 비참한 죽음.

나는 사도세자의 이야기를 어릴 때부터 마음 아파했다.
영화 <사도>를 본 후에도 한동안 사도의 삶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고, OST를 들으면 눈물이 나기도 했다.
뮤지컬을 보기 전에도, 나는 늘 사도제사의 편이었다. 지금도 그 감정은 변함없다.

사도세자는 왕이 되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의 삶은 선택이 아닌 주어진 미래였고, 그 속에서 아버지에게 인정받지 못한 채 억압받았다.
물론 그가 저지른 폭력과 살인은 용납될 수 없지만, 나는 그것이 정신적으로 붕괴된 끝에서 나온 행동이라 생각한다.
그의 마지막이 '굶어 죽는 것'이었다는 사실은, 인간으로서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사약도, 형벌도 아닌 뒤주에 갇혀 죽은 왕세자.
그 상징성과 공포는 말그대로 절망이었다.

특히 어린 아들(정조)이 바라보는 가운데 뒤주에 갇히는 장면을 생각하면, 그가 마지막까지 느꼈을 수치심, 공포, 절망이 너무도 생생하게 다가온다.

영조, 가해자인가 피해자인가.

나는 한동안 영조를 '피도 눈물도 없는 아버지'로 여겼다.
하지만 뮤지컬 <쉐도우>는 나를 그 생각에서 조금 멀어지게 했다.

영조 역시 자신의 삶 전체를 증명해야만 했던 왕이었다.
자신의 형이 병약하다는 이유로 왕위에 올랐고, 사람들은 그를 두고 "형을 죽이고 왕이 된 자"라고 수근댔다.
그는 계속해서 '정당한 군주'임을 증명하며 살아야 했다.
사도를 공개적으로 용서할 수 없었던 이유, 단순히 냉철함이 아닌 체제를 지키기 위한 고통스러운 선택이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임슬립이라는 장치의 힘

공연 중 사도세자가 타임슬립을 통해 어린 영조를 만나는 장면이 있다.
처음에는 솔직히 좀 화가 났다.
죽음을 앞둔 사도가, 결국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는 이야기일까 봐.
그저 비극의 당사자로 남아도 되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사도세자가 영조의 삶을 이해하고 그를 원망조차도 하지 못하게 된다면 그의 삶이 더 비극적으로 느껴질 것 같아서)

하지만 이상하게도, 뒤로 갈수록 영조의 감정에 집중하게 됐다.
사도와 시간을 보내고, 그가 미래에서 온 자신의 아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과거에 그는 그에게 '아들을 죽이는 아버지는 없다'고 말하지만, 결국 그가 바로 그 아버지라는 아이러니가 된다. 

소년 같던 영조가 점점 왕이 되어가는 과정.
무게에 짓눌리고, 냉혹해지고, 마침내 아들을 죽이는 자리에 선 아버지가 되어버린 순간.
그가 사도에게 사과하는 장면은, 쉽게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교차했다.

무대 위의 '뒤주'와 상징


<쉐도우>의 무대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치는 '뒤주'였다.
사도가 갇히는 네몬나 박스가 있고, 그 바깥에는 훨씬 더 큰 같은 형태의 박스가 있다.
나는 그것이 영조가 갇힌 상징적인 두디주라고 느꼈다.

사도는 물리적인 뒤주에 갇혀 죽였지만,
영조 역시 아들을 죽인 왕이라는 죄책감 속에서 평생을 살아갔다.
그 뒤주는 권력, 체제, 명분이라는 이름의 감옥이었다.

락 뮤지컬이라는 선택

락이라는 장르가, 이 격렬한 비극과 너무나도 잘 어울렸다.
고통, 분노, 절규, 통곡 , 그 모든 감정이 음악에 실려 무대 위에서 폭발했다.
뒤주 안에서 사도의 얼굴을 클로즈업해 보여주는 연출은 너무 신선했고,
음악은 몇 곡만 들어도 계속 귀에 남는다.

마지막 커튼콜에서 신나게 뛰는 배우들을 보며, 잠시 무겅누 감정을 내려놓을 수 있어서 좋았다. 

정리하며 _ 그 누구도 행복하지 않았던 이야기

영조도, 사도도, 그리고 그 둘 사이에 놓인 정조도.
그 누구도 행복하지 못한 이야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의 아들 정조가 왕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결국 영조의 단호한 결단 덕분이었을지도 모른다.

역사는 늘 복잡하고, 그 안에 살아 있는 사람들의 감정은 더 복잡하다.
<쉐도우>는 그 감정을, 무겁고도 격렬하게, 그러나 아름답게 보여준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