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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음악은 아름다웠지만, 그는 행복했을까 - 뮤지컬 <라흐마니노프> 후기/ 김재범x원태민

 

뮤지컬 〈라흐마니노프〉 관람 후기: 음악은 아름답지만, 그 음악가는 늘 행복했을까

10월 10일, 뮤지컬 <라흐마니노프>를 관람했다.
니콜라이 달 역은 김재범 배우, 라흐마니노프 역은 원태민 배우였다.

나는 김재범 배우의 연기 스타일을 워낙 좋아해서, 그가 출연하는 작품은 거의 챙겨보는 편이다. 이번에도 역시나 연기적으로 만족스러웠지만, 극 전반에 대한 개인적인 감상은 조금 다르게 다가왔다.

예상과는 달랐던 방향성

극을 보기 전, 나는 라흐마니노프와 니콜라이 달의 관계성에 대한 이야기가 중심이 될 줄 알았다.
그러나 극은 거의 대부분 라흐마니노프의 내면과 고통, 음악 인생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래서 공연을 보는 내내 “왜 이 둘의 이야기가 아닌, 라흐마니노프만 이야기하지?”라는 의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 결과, 초반에는 극에 제대로 몰입하지 못했고, 전체 흐름을 이해하는 데도 다소 어려움을 느꼈던 것 같다.

연기와 캐릭터의 조화

실제 김재범 배우와 원태민 배우는 나이 차이가 꽤 나는 편인데, 이 점이 오히려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니콜라이 달이 라흐마니노프를 ‘다룬다’는 느낌이 잘 살아났고, 두 사람이 친구처럼만 보였다면 집중도가 떨어졌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기와 노래는 정말 훌륭했다.
특히 라흐마니노프가 어릴 때부터 주변의 기대를 등에 업고 살아가며 받는 압박감,
그 안에서 점점 무너져가는 심리 상태,
그리고 그 기대를 감당하지 못하는 내면의 고통이 섬세하게 그려져 있었다.
그 감정선이 나에게까지 밀려와 마음이 아플 정도였다.

예민한 영혼과 치료자의 교감

니콜라이 달은 극 중에서 비올라 연주를 통해 라흐마니노프와 교감하는 장면이 인상 깊었다.
라흐마니노프는 예민하고 공격적인 태도를 보였지만, 달의 조심스럽고도 진심 어린 연주가 그의 방어막을 조금씩 허물게 했다.
그 장면 하나만으로도 이 극이 지닌 잔잔한 설득력이 충분히 느껴졌다.

또한 생각해보면, 그 시절 ‘정신 치료’는 아직 대중적이지 않은 낯선 개념이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상처는 치료받지 못하고 그대로 곪는 경우가 많았을 텐데, 라흐마니노프는 달이라는 인물을 만났다는 것 자체가 큰 행운이었는지도 모른다.

음악으로 모든 걸 쏟아낸 천재의 아이러니

극 중 라흐마니노프는 자신의 모든 기교와 능력을 총동원해 음악을 만들지만, 사람들은 그 음악을 ‘어렵다’고 느낀다.
그의 고군분투는 오히려 사람들과의 거리감을 만들었고, 대중에게 사랑받는 작곡가 차이코프스키와 대비되며 더욱 고독하게 보였다.

이 부분에서 최근 관람했던 연극 〈아마데우스〉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질투하면서도 그의 천재성을 인정했던 것처럼,
라흐마니노프 역시 스스로와의 비교 속에서 자신을 갉아먹는 모습이 겹쳐 보였다.

음악은 행복하지만, 음악가는 그만큼 행복했을까

뮤지컬을 보면서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돈 문장이 있다.

“음악은 아름답고, 우리는 그 음악을 통해 행복해지지만... 그 음악을 만든 작곡가들은 마냥 행복했을까.”

아마도 이 극은 그 질문에 정면으로 답하는 작품이 아니었을까 싶다.

 마무리 감상

내가 극을 보며 아쉬웠던 건 두 인물의 관계성에 조금 더 집중했으면 좋았겠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어떤 관객은 “니콜라이 달의 시선에서 극을 바라보면 또 다른 재미가 있다”는 해석을 하기도 했다.
그래서 혹시 관람을 앞둔 분들이 있다면, 이 두 시각을 염두에 두고 보면 더 풍성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배우들의 대사로 극을 이끌어가는 연극의 형식 속에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이 배경으로 깔렸다면 더 감정에 와닿지 않았을까 생각해봤다.
넘버 자체는 크게 남지 않아서 그런 생각이 더 들었던 것 같다.